_잔잔한 호수에 아주 작은 돌멩이를 던져도 원을 그리며 번져갑니다. 마찬가지로 아주 작은 말 한마디도 가슴에 여운을 남기며 번져 감을 느낍니다.

_가끔씩 자신을 들여다 볼 때, 숱한 말들로 가득함을 봅니다. 이를테면 추억과 기억의 말들, 아픔과 한의 말들, 이루지 못한 생각과 이루어야 할 생각 등 온통 말들로 차 있음을 보게 됩니다. 마치 말의 호수처럼…
_따라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사소한 말 한마디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기까지 합니다.

_입에서 나오는 것만이 다 말입니까? 그것도 아닙니다. 눈빛, 표정, 몸짓 등 우리는 사실상 무수한 말들 속에서 살아갑니다.
_따라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사소한 말 한마디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기까지 합니다.

_입에서 나오는 것만이 다 말입니까? 그것도 아닙니다. 눈빛, 표정, 몸짓 등 우리는 사실상 무수한 말들 속에서 살아갑니다.
_따라서 각자가 지니고 있는 말들을 권력가들은 하나의 원칙과 가치로 묶으려 합니다. 이를테면 종교의 경우 특히 유대교의 경우처럼 율법으로 강력하게 나아갈 방향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강요하게 된 것입니다.
그래서 율법을 들여다보면, 의외로 그 당시의 지식인들(율법학자, 수석사제들)의 욕구가 크게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. 그러한 율법이 점차적으로 고착해 가다보면, 율법이 오히려 사람의 본연적 생명의 언어마저 구속하고 얼어붙게 하는 또 다른 권력과 위선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봅니다.

_제1독서 갈라티아서 5,4에서 ‘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와 인연이 끊겼습니다. 여러분은 은총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’ 그러면서 5~6절에서 ‘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로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.’

_말 중에서 가장 살아있는 말, 생멸력 있는 말은 “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”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.

_오늘 복음(루카11,38)에서 ‘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제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.’

_그들은 무엇을 제일 먼저 보았습니까?
우리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대목입니다. 우리 또한 사람을 볼 때 무엇을 제일 먼저 봅니까?

_그래서 39절에서 “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,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.”

_남을 보기 전에 나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.
내가 먼저 말씀과 진리 안에 잠겨있을 때, 모든 것들 안에서 성령을 느끼고 뵈오며 하느님 사랑을 만납니다.
_이것이 최고의 공감입니다. 타인의 맘을 끌어안기 전에 먼저 내가 말씀 안에 머무는 그 믿음이 모든 공감을 불어온다는 것입니다.

_그러나 자기 경험적 지식에 갇힌 사람이나 우월적 사고에 갇힌 사람을 매사에 겉만 보기에 본인도 멀지않아 상대방으로부터 버림받게 되고 스스로는 결국 병들어 가게 됩니다.

__진정한 자유와 자심감은 어디에서부터 움터나는가?
__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.

<김우성 비오 신부>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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